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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배철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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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심연 302page


 어느 날 처가 책을 하나 사달라고 지나가듯 무심히 이야기하였다. 집을 사달라는 허무맹랑한 부탁도 아니었고 또 책을 사달라는 부탁이 자주는 아니지만 왕왕 있었던 일이기에 별생각 없이  “알겠다.” 대답을 하였다.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어쩐지 짬이 잘 나지 않았고, 원체 게으른 성격인 걸 아는 처는 이후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부탁을 받은 입장에서는 마치 빚독촉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하였고  처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책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가진 체 다시 며칠이 흘러 마침 광화문 근처에 업무가 있어 잠시 교보문고에 들려 책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책을 집어 들며 빚쟁이 기분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실소가 나왔다.

 책을 계산대에 올리며 불현듯 "처는 왜 이 책을 사달라고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어디서 책에 대한 글이라도 읽었던 것이었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짧은 시간에 스쳐갔지만 이내 질문의 마지막은 "처는 왜 이 책이 읽고 싶은 것일까?"하는 의문이었다. 이런저런 잡념에 시달리고 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카운터의 여직원은 재차 환불에 대한 규정을 이야기하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물론 그 미심쩍다고 느낀 기분도 내 잡념의 탓이었겠지만, 그 잡념의 내용이 단지 처의 마음이 궁금했던걸 그 여직원도 알았다면 같이 실소를 지었을까?


 책을 구매하며 잠깐 책의 내용을 훑어보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읽어오던 몇몇의 책들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게 훑어본다고 책의 내용과 의미를 알 수 있었다면 모든 책을 정독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책을 집어 들면 당연지사 책의 내용이 궁금한 게 인지상정이지만, 이상하게 책의 내용보다 처의 마음이 더 궁금하여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빠르게 책을 읽어 내려갔다. 
 특별히 어렵거나 심오한 책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읽기 쉬운 편에 속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작가는 여느 명언 그리고 유명인들의 말들을 섞어가며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책은 제목처럼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평판과 판단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따라 받아들임의 정도는 분명히 다르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내용의 영화라도 감독의 연출이나 의도에 따라 그 영화의 평가가 달라지듯이 수많은 책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같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그 책을 판단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좋은 내용의 책이고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문제는 책을 다 읽었음에도  처가 왜 이 책을 읽고자 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심정으로 이미 다 읽은 책을 이리저리 뒤적여봤지만, 이내 답 없는 질문을 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을 덮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왜  이런 책을 그동안 읽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니체가 굳이 자신의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혼돈을 가지고 있다. 다만 혼돈을 품고 있다고 모두가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만 하다 무의미하게 끝이 날 수도 있고(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또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 혼돈을 통해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고민하고 혹시나 책을 통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책을 읽는다. 처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자신의 혼돈의 답을 찾기 위함이었겠지..
 하지만 결국 처가 왜 이 책을 사달라고 했는지는 추측만 할 뿐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처가 이 책을 다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처 덕분에 책 한 권을 더 읽게 되었으니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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